지난 6월 말께였지요. 새까맣게 탄 얼굴의 그를 만난 건 요세미티 해프돔 아래 자리한 어느 캠프장이었습니다. 연맹의 가맹단체 중의 하나인 뉴욕한미산악회의 JMT(John Muir Trail) 원정 등반을 축하하고자 들렀던 것이지요. 그 길에는 연맹 오석환 회장과 최동백 부회장이 함께 했었지요. 물론, 그곳에는 연맹의 열혈 하이커 크리스 주 이사도 있을 것이었지요. 그도 이미 20여 일 전에 JMT 전 구간 완주를 위해 단신으로 떠났던 것이니까요.

폭우가 쏟아지는 그 캠프장에서 오랫만에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에 그를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살이 빠진 데다 새까만 얼굴의 그를 몰라봤더랬지요. 나를 따라 인사를 나누었던 오회장과 최부회장은 악수를 나누고도 그를 몰라봤더랍니다. 게다가 남미인들이 즐겨쓰는 밀짚모자에다 하얀 트레일 셔츠를 입고 있었으니까요. 몰라볼 만도 했겠지요. 그에게 “남미 인디오 소년”이라고 건넸던 농담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단신으로 떠났지만 일부 구간부터는 뉴욕한미산악회 회원들과 동행을 하면서 미 동부와 서부를 아우르는 우애를 다졌던 거지요. 그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던 겁니다. 그만큼 그가 하는 모든 일에는 치밀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항상 따랐습니다. 연맹의 대표 연례 행사로 자리잡은 ‘명산 순례’는 그의 숨은 노고가 배어 있습니다. 전 미주를 아우르는 이 행사는 각지에 산재한 가맹단체들의 참여 독려를 시작으로 시시각각 쏟아지는 질의 응답, 참가 인원 파악, 심지어 공항 도착 시각과 로컬 산악인들의 픽업 스케줄 조정 등을 혼자서 다 치러냈습니다. 그야말로 여럿이 달라붙었어야 할 일을 ‘1인팀’으로 해냈습니다. 몇 년 동안 묵묵히 그 일을 해냈으니, 산에 대한 열정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랬으니, 전 미주 산악인들이 현재의 회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크리스’는 알았던 거지요.

연전에는 소리 소문없이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떠났다가 현지에서 귀국이 늦어질 정도로 폐렴으로 고생을 했을 만큼 열혈 하이커였습니다. 지난 8월 다녀왔던 그랜드 티턴 원정을 앞두고 훈련차 남가주의 최고봉 샌고고니오 마운틴을 그와 함께 최부회장, 그리고 제가 올랐습니다. 트레일 초반부터 난데없이 쏟아진 폭우를 맞으며 올랐습니다. 지그재그의 스위치백을 1마일쯤 올랐을까요, 그제서야 스토브를 주차된 차에 두고온 걸 알게 됐습니다. 난감해 하던 우릴 두고 그는 두말 않고 달려내려갔지요. 주름 없는 이마에 짧게 깎은 머리의 그를 보며, 젊으니 좋네라며 당연하게 생각했었지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항상 청년처럼 보였던 그가 이미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선 지 오래라는 것을요. 그는 산행에서도 ‘미니멀리스트’였습니다. 매사에 겸손하고, 물욕이 없는 그는 후배라기보다는 듬직한 선배로 보이기까지 했지요.

그런 그가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의 부고는 황망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워싱턴 주의 ‘드래곤 테일 피크’, 미 본토 최고봉 ‘휘트니 마운틴’, 두 차례의 샌고고니오봉 등을 올랐지만 그와 함께 올라야 할 곳이 아직도 너무 많지만 더 이상 그의 사람 좋은 미소를 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떠나기 이틀 전에도 그는 전화를 걸어와 곧 눈이 올테니, ‘고고니오’를 다시 오르자며 산에 대한 열정을 보였지요.

니체는 말했지요, ‘망각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라고. 그럴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니, 그는 잊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없는 앤젤레스 내셔널 포리스트를 찾을 것이고, 그가 함께 올랐어야 할 고고니오도 그 없이 오르는 날이 올테지요. 하지만, 꿈엔들 잊힐까요. 그는 우리들 마음 속에 영원히 자리할 것입니다.

머지 않아 눈이 내리면 그와 함께 고고니오를 오르고 싶습니다. 마음에 담은 그와 함께 말이지요. 그는 돌로 쌓은 정상의 돌 바람막이 안에서 밤을 지새고 싶어했습니다. 그 없는 그 밤을 그곳에서 보낼 것입니다.

11월 12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