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나’라고 그랬다. Burner를 두고 그랬으리라. 궂이 ‘버너’라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니.

80년대 산에 갈때는 이 빠나에다 텐트, 쌀, 꽁치나 고등어 통조림, 양파, 감자, 김치만 있으면 됐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쏘주’…ㅋ

인류 모두가 겪는 역사상 전대미문의 팬데믹(Pandemic, Pan+epidemic) 상황이니 누굴 탓하랴. 속절없이 시간만 보낼 밖에. 그나마 이곳 미국에선 주정부에선 EDD(고용안정청)의 UI(실업급여), 연방정부에선 재난 지원금이 나오니 견딜 수는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매일 열려 있는 캠핑장을 검색하는 일이 반복된다. 여름 후반에 들어서는 캘리포니아 전역이 화마의 급습으로 인근의 모든 산이 출입불가. 당연히 캠프장이 오랫동안 문을 닫았다. 몇몇 곳이 10월 초순부터 문을 열었으나, 대부분은 이미 연간 개장기간이 차서 문을 다시 열지도 못한채 내년 봄을 기약하는 신세가 됐다. 그나마 이달 말까지 열려 있는 곳을 찾아서 모레 달리기로 한다. 고도가 8000피트에 이르니, 몹시도 추울테지. 산불 때문에 파이어링(Fire Ring)에 불도 피울 수 없을 테니, 준비한 게 따로 있다. 바로 쏘주라는 이름의 그것. ㅋ.

​하는 일이 없으니, 차고에 장비 챙기러 들어갔다가 선반의 ‘빠나’에 눈이 꽂혀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기척이 없으니, 아내는 나를 찾아 집안을 휘젖다가 차고에까지 납시었다가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선다. “당신 없으면 그것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갈 거”라는 ‘저주’와 함께…

​한국에서 올 때 이삿짐에 넣어온 것도 있고, 이곳에서 산 것도 있어 모아보니, 꽤 된다. 얼마 전 ‘도네이션 센터’에 갖다 준 것들이 새삼 생각난다. 갖고 있는 걸 세어보니, 대략 12개. 모두 나의 등산 또는 캠핑 역사에 동참했던 것들이다. 개중에는 지인이 ‘던져’ 주고 간 것도 있다.

​지금부터 아무 쓸 데 없는 나의 ‘빠나’ 히스토리를 엮어본다. 물론, 순서도 없고 대단한 정보도 없다.

□ 콜맨 502

1960년대 케네디가 대통령이던 시절, 비틀즈가 막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미,소간 우주경쟁이 점화되고,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때… 1961년 이 버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빠나라고 부르던 이 버너, 사실 미국에서는 스토브(Stove)라고 불러야 알아듣는다. 한국에서 부르던 ‘코펠’도 이곳에서 ‘Cooking set for camping’라고 다소 길게 말해야 알아듣듯이. 어쨌든 이 빠나는 외형이 거의 유사했던 선대 501의 대를 이은 물건이다. 선대 501은 긴 예열시간으로 인해 뻘건 불꽃이 한참이나 지속되던 까닭에 그 생애가 짧았다.

뒤를 이은 이 물건은 다소 화력은 약했지만, 나머지 장점이 많아 양산으로 이어졌다. 해서 아직도 동네 거라지 세일을 찾아가보면 낡은 집 차고 선반에서 간혹 발견된다. 이놈 역시 ‘에스테이트 세일'(Estate sale, 집만 빼고 집안의 모든 물건을 파는 중고 세일)에서 건졌다. 막힌 노즐도 뚫어주고, 녹슨 바람막이도 광을 냈다. 펌프의 압력이 약해 WD-40을 뿌려 임시방편도 했다. 묽직한 외관에 만듦새도 튼튼해서 그 무게를 애써 외면하고서 몇 차례 오토 캠핑에 데려갔다. 지나가는 이웃 캠퍼들에게 보란듯이 내보이기도 했었다. 지금은 차고 선반에서 ‘삼대구년’만에나 일별할 내 눈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 콜맨 듀얼 퓨얼 533

백패킹이 아닌 가족 오토 캠핑의 왕자다. 적어도 우리집에선. 색깔만 빼고는 이와 외관이 거의 똑같은(제너레이터가 지나가는 국물받이 또는 윈드 스크린의 가장자리의 홈이 살짝 다르다) 선대 508의 대를 이어 현재 시판 중인 롱셀러다.

508이 Coleman Fuel이라고 부르는 흰색 정제휘발유 또는 무연휘발유만을 써야 했던 것과 달리 이 친구는 레이블에 떡 하니 ‘듀얼 퓨얼(Dual Fuel)이라고 붙이고 있다. 유사시 파라핀(Paraffin) 또는 케로신(Kerosene)이라고 부르는 등유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구매시 따라오는 제너레이터를 교체해야 될 걸요. ^ ^.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 ㅋ

508A라는 모델까지 채용했던 연료공급 밸브와 노즐 청소겸 화력 조절 밸브로 이원화했던 것을 508이후 부터는 연료공급과 제너레이터 노즐 청소까지를 하나의 밸브로 조절한다. 콜맨의 전용 컬러였던 녹색에서 그레이로의 변신을 꾀하던 모델의 중심에 서 있다. 우리 가족 캠핑에서는 주로 묽직한 압력밥솥 담당이다. 탱크내 연료량의 차이와 캠프장의 고도에 따른 기압 차이 등으로 인해 미세한 불 조절이 용이하지 않아서다.

더군다나 한참 음식이 무르익어 불 조절을 할라치면 밸브의 빨간 손잡이가 불판에 너무 가까운 탓에 뜨거워져서 손을 데일 수가 있다. 남용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져서 떠나보낸 508은 그 빨갛고 예뻤던 손잡이가 화상을 입어 남루했었다.

참,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한 케이스 얘긴 빼먹을 뻔 했다.

□콜맨 엑스포넌트 멀티 퓨얼 550B

이놈은 2006년산으로 2012년 내 수중에 들어왔으나, 지금까지 손때만 타고 있다. 묽직하고 튼튼함을 내세우던 콜맨이 백패커들을 현혹시킬 혁신 시리즈를 내놨다. 일단 몸체의 색깔을 바꿨다. 녹색 위주이던 것에서 황금색을 입혔다. 기존의 스틸 소재를 알루미늄으로 대거 대체해 경량화를 시도했다. 연료탱크도 알루미늄이다. 윈드스크린 혹은 냄비 받침대는 약해보이기까지 한다. 삼발이는 아예 플래스틱으로 했고, 거기에 점차 높이가 달라지는 플래스틱 링을 끼워서 수평 잡기에 용이함을 추구했다.

듀얼도 아닌 멀티라니. 화이트개솔린부터 자동차용 무연휘발유(Unleaded gasoline), 포장상자에 같이 따라왔던 또 하나의 제너레이터(연료 이송관)를 교체하면 난방용 곤로에나 쓰일 백등유도 쓸 수 있다. 몸통이 회색이었던 (엑스포넌트란 모델명 대신) Peak1이라 이름붙었던 모델은 미해병대의 지급품이기도 했다. 천으로 만든 수납색 대신코펠로 쓸 수 있는 사각형의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겼다.

이 황금색 시리즈는 휘발유 랜턴에도, 연료 탱크가 분리된 또 다른 빠나로도 이어졌다.

□ 국산 라이온 R801

대학생이던 80년대 나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삶이 팍팍할 때면 이 빠나를 꺼내 가슴에 품어본다. 내 마음은 영화 ‘박하사탕’ 처럼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로 줄달음친다. ㅋ

​1학년 때 생애 첫 빠나는 라이온의 대중적이면서도 외국산에 견주어 하나도 손색이 없었던 ‘라이온 M933’이었다. 황동색의 몸체에 분리해 접을 수 있었던 바람막이, 0.6리터의 대형 연료탱크에 ‘만땅’시 무려 4시간의 지속성까지 두루 갖췄던 ‘괴물’이었다. 국산 버너로 자랑스레 KS마크를 몸에 새겼던 놈이다.

등유를 원료로 쓰던 까닭에 외부 연료로 두 개의 U자가 겹쳐졌던 연료 공급관을 예열하느라, 알코올이 쓰였지만, 불편한 줄 몰랐다. 약국에서 알코올을 사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언젠가 여름 지리산 천왕봉 아래서 텐트를 치고 든든한 맘으로 꺼냈던 이 빠나가 애물단지로 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실했던 플래스틱병에서 알코올 솔솔 새서 증발했던 것. 당시 국제시장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었던 캠핑용품을 대학 학생회관에서 팔았는데, 그때 이놈을 봤지만 용돈 사정이 허락치 않았다.

그러다 지금은 복개돼서 사라졌겠지만 버스비를 아끼느라 종종 걸어다녔던 온천천변의 공업사가 눈에 띄었는데, 세상에 그곳에서 이 버너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조그만 간판에 ‘제일금속’이란 이름을 달고. 가격을 물으니, 당연히 학생회관보다는 쌀 수밖에. 그곳에서 들였던 놈이다. 이후 이놈은 지리산으로, 남해 어느 바닷가로, 어느 골짜기로 나와 동행했다. 어떤 때는 텐트 속에서 불을 붙이다 황급히 모래사장으로 내던져지기도 했었다.

알코올을 아끼느라 너무 적은 양을 쓰는 바람에 예열이 안돼 크고 높은 불꽃을 내뿜었던 것.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이 R801은 복학생이던 때 대학 학생회관에서 장만했던 것이다. 일단 선대 어르신보다 몸체가 작아졌다. 세 발도 쏙 접어지니 앙증맞기까지 하다. 탱크가 작아지긴했지만 휴대성이 훨씬 좋아졌다.

M-1950이란 모델명으로 출시돼서 전 세계에서 위력을 떨쳤던 콜맨사의 군용형을 본 딴듯 싶다. 라이온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연료 조절 밸브만 다를 뿐 쌍둥이나 다름 없어 보인다. 이 M-1950은 한국전에서도 위용을 떨쳤다.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는 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곤 하셨다.

미군들은 연기도 없이 불을 때는 이 신통방통한 물건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한국군은 캄캄해진 뒤에야 근처 민가에서 지어 올리는 밥지게에 의존해야 했다고. 어차피 포격으로 민둥산이 돼서 땔감도 없었지만, 어떻게 토굴 속에서 부서진 생나무 조각으로 불을 땔라 치면, 검은 하늘로 새파랗게 피어 올랐던 그 연기는 저승사자의 손짓에 다름아니었다고.

어느 날의 그 연기를 보고 찾아왔는지, 근처 민가의 어느 할배가 져 올랐던 그 밥지게를 보고 찾아왔는지 결국 어느 날 그 참호 속으로 수발의 수류탄이 들어왔다고. 한참 뒤 허리에 부상을 입은 아버지와 분대장만 살아 남아 동시에 참호를 튀어나와 민둥산을 굴러내려왔는데, 아버지만 살아남았다고…

구사일생 한국군을 만나 목숨은 건졌지만, 다시 전선으로 가야했다고.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얘기가 샛길로 가버리긴 했지만, 생전에 아버지의 육성을 담아놓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 M-1950은 아직도 ebay의 단골메뉴 자리에 올라 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