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2 최용자

 

 

나의 새로운 도전

내 나이 67. 남들은 등산학교에 입학한다는 얘기에, 나의 많은 나이탓으로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일평생동안 줄곳 갖은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가능할거다하며 나의 도전에 용기를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험난한 대자연에 도전하고 싶은 내 자신의 한계를 한번 극복해보는 것도 정말 좋은 체험이 될것이다 생각했다. 그럼으로서 나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 되었다. 워낙 등산은 많이 다녔지만 바위는 감히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처음에 바위를 보았을땐 가슴이 두근거릴정도로 벅찬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번 하강을 하고보니 곧 안전성이 내 맘을 가라 앉혔다.

많은 강사님들이 안전을 위해 고생을 하시고 이렇게 극박한 세상에 4 6일동안 무료봉사 하시는 강사님들을 보며 내 자신도 앞으로 많은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듭이라는것을 배웠을때 참 재미가 있었다. Belay 를 보는것도 참 재미있었다. 바위도 피가 흐른다는 말씀에 대 자연 모두가 나와 함께 어울려 살아 숨을 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벽등반 4일동안 한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한발한발 침착하게 옮겼으며 호흡조절을 하며 올라갔다. 집중력과 지구력이 많이 요하는 운동 이었다. 이러한 극기훈련을 한번 체험해보는것도 인생사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같아 내 자녀들에게도 적극 추천을 했다.

이러한 좋은 경험을 하게 된것을 KAFA ALPINE SCHOOL 관계자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10 3  노기제                                                                                 

 

내 목숨 그대에게

 

맡긴다. 맡길 수 있다. 믿는다. 믿을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갈급한 단어라 생각 한다. 나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기에 둘이 합하여 가정을 이루고 가정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지만 하나의 개체로서 우린 다른 개체를 어디까지 믿고 살 수 있을까. 내게 가장 소중한 내 목숨까지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작은 천국을 이루는 천사들의 경지가 아닐까.

지난 두 주말을 암벽등반 초보 클래스 학생으로 단체 생활을 했다. 하고 싶은 취미 생활의 일부 정도로 비중을 두었던 종목이다. 즐기며 할 수 있는 취미의 일종이려니 가볍게 생각 했다. 남편 덕에 살짝 맞보기 암벽등반은 경험이 있던 터라 대충 하면 되려니 편안한 시작이었다.

첫 날 첫 강의부터 결코 가볍게 임할 취미의 일종은 아니란 경고를 느꼈다. 단순하게 운동 차원이 아니다. 내 목숨이 순식간에 날아 갈 수도 있다. 등반의 역사, 장비들의 개발과 발전 되어 온 과정, 그럼에도 많은 목숨들이 자연의 응징 앞에 묵묵히 사라진 사실들을 접하게 되었다.

겸허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등반 때 최소한의 숫자를 둘로 하라. 강사가 하는 대로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 즉 내 멋대로는 안 된다. 파트너와의 신의가 최우선이다. 마치 배우자를 만나는 마음이다. 그 사람을 전적으로 믿고, 나를 맡기는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오늘이 있기까지 한 번도 누구를 그렇게 믿었던 기억이 없다. 누굴 믿는 단 말인가. 하물며 내 목숨을 맡긴다고? 어림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온전히 믿고 살기는 했지만 인간을 믿는 행위는 불가능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암벽등반에 입문하려면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인간끼리의 절대적 믿음이 첫 조건이다. 누구를 어떻게 믿고 내 목숨을 맡길까.

암벽등반 때, 손가락들은 모아라. 발은 십 일자를 만들고 초보단계엔 발바닥 삼분의 일 앞부분을 중점적으로 사용한다. 암벽등반은 발로 한다. 장비를 믿어라. 특히 암벽화를 믿고 한 발 한 발 오를 때마다 체중을 따라 옮기며 무릎을 펴라. 반복하면 어느새 한 피치 60 미터짜리 자일 끝 부분이다. 그 다음 자기 확보를 실행해라. 파트너가 확보 해 줬기에 올랐으니, 감사한 마음 전하게 된다. 후 등자를 위해서도 우선 나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 다음 올라오는 사람의 확보를 준비하며 돕는다.

등반에 사용되는 특수 용어들을 사랑의 언어인양 주고받으며 준비 된 상태를 서로 확인하고 바위에 오르기 전, 자일로 연결 된 두 마음이 뜨거운 사랑을 빚어낸다. 출발 지점에서 확보를 보든, 선등해서 멀어진 거리로 서로 눈맞춤 없이 확보를 보든, 뜨거운 믿음의 교류는 자일을 통해 이뤄진다.

사랑, 어떻게 만들어 질까. 사랑하게 되면 믿음은 말없이 따라 온다. 첫 눈에 사랑할 수 없다면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관심을 갖고 알고자 노력 하는 거다. 함께 교육 받게 된 동기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려 결정하니 열 일곱 전부를 쉽게 외웠다. 먼저 다가가 이름 불러 주고 인사를 하며 친근해 지니 사랑스럽다 느껴진다. 함께 교육생이 된 동기들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내 목숨을 맡기도록 믿을 수 있는 경지가 될 터.

열일곱 학생들을 위해 투입 된 실전 강사님들의 봉사정신 역시 뜨거운 사랑이다. 등산과 달리 암벽엔 그늘이 없다. 땡볕에 노출되어 학생들 보다 일찍 도착해서 필요한 장비들 설치하고, 안전에 안전을 목표로 헌신 하신다. 먹이고 재우기 위해 텐트 치고, 식사 시중에 많은 분들의 사랑이 여러 겹이 되어 교육생들을 감싸고 있다. 안온하다. 믿음이 솟는다.

가격이 높은 각종 장비들이 바위에 깔리고 박혀 있지만, 천재지변으로 인해 등반이 어려울 경우, 무조건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처하라. 내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 딱 하나 뿐인 내 목숨을 챙겨라. 나머진 다 버려라. 각종 이론 교육시간에 강사 여러분들이 알차게 준비한 강목들이 엄청난 양이지만 요점은 “죽지 말고 살아라” 다. 그러기 위해 2톤이란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각종 장비들과 로프 매듭법등으로 학생들에게 믿음을 준다.

말 잘 듣는 학생이 아니고, 강사를 그대로 따라 하는 학생들로서 무사히 예정 된 과목들을 이수하고 열다섯 학생이 졸업 했다. 줄곧 평안 했던 건 아니다. 두려움도 잠깐 스쳤고, 중도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다.

자신의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믿음과 사랑을 끄집어내어 실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신비한 암벽등반을. 철저한 준비, 겸손하게 숙인 고개, 믿음과 사랑으로 한 덩어리 된 세상을 우리가 속한 이 사회에서 다시 만들고 싶다.*****

 

 

 

*** 4번 박흥식 (안드레아)

 

이번의 등산학교의 경험을 글로 표현 한다는 것은 한날 번진 잉크 자국으로 비쳐질까 걱정이 되지만이글을 씁니다.

 

산을 처음 접한것은 아마도 어린시절 도네의 뒷동산을 오르면서 부터 였을것 같다.

그리고 세윌이 지나 중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별다른 준비 없이 산행을 다니고 했던 기억을 떠 올려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민생활이 시작 되면서 산행이나 캠핑이라는것은 여유롭고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인것 같아 멀어져 갔고, 그저 가족이나 지인들과 동네 근천에의 공원에서 고기나 구우면서 지내는것이 아마 유일한 여가 생활인줄 알던중 4년전쯤 우연한 기회에 주위의 분들과 건강을 걱정하면서 운동을 하자며 한것이 산악회에 조인하여 주말마다 산행을 하면서 산행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것같다. 때로는 힘들었고 어려움을 느꼈지만 항상 나지신에게 할수있다는 단어를 되새기면서 인생의 행로와 깉은 산행을 즐겼던거 같다.

그러나 항상 어떻게 하면 체계적이고, 정확한 지식속에서 산행을 할수있을까 하는 목마름이 있었던차에 산악회 원유광 선배님으로 부터 등산학교에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는 권유 받고 망설여 졌지만 산행에 대한 나의 갈증 해소 할수있을것 같아 입학 신청을 하게 되었는데, 오리엔테이션에 가보니 내가 생각 했던것과는 다른 암벽등반을 배우는것이라 하기에 위험하게 느껴지고 또  나의 능력 밖인것 같아 포기하려는 쪽으로 생각이 다가갔다. 그러나 강사님들의 설명을 듣고 나자신에게 수차례 반문해보았다할수있을까를 말이다.

다른 수강생들도 하는데 한번 해보자 다짐하며 입교를 걱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교육을 받으면서 암벽등반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게되었다. 어쩌면 어려운 과정 하나하나가 우리가 살아온 길과 우리가 살아가야할길이 암벽등반 한걸음 한걸음과 같아 가슴이 뭉클해져옴을 느끼곤 했다.

여러과정을 거치고 마지막 졸업등반을 가보니 정상은 보이지 않고 줄만 내려저 있는것이 아닌가 걱정만 앞서며 또 자신만의 이기적인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수월한 쪽이 선택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종착점도 보이지는 않지만 과정을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지 않을까 믿음 속에서 말이다. 언제든지 어떠한 경우든지할수있지라는 단어를 다시한번 되새기며 이번 등산학교 에서 삶의 많은것을 배우게해준 강사님들의 노고와 이러한 기회를 주신 선배 산악인 들에게 감사랑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 12번 강신의

 

먼저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kafa에 감사 드립니다.

 

산행 시작한지 1.

자기의 의욕과 패기 그리고 체력만 믿고 무지한 산행을 해왔었던 저이기에 더욱 값진 졸업 이라 하겠 읍니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도 않고 식량도 잘 준비 하지 않은채 (알면서 귀찮고 무거워서) 겨울 산행을 하다 몇번을 위험한 상황에 접했고 남을 배려 하지 못했던 이기적인 산행을 생각해보면 마냥 부끄럽고 아찔하기 짝이 없읍니다.이번 암벽등산 자체만은 아이들 처럼 마냥 즐겁게 기술을 배우며 최대한 즐겼다면,반면에 강사님들의 안전교육과 위기 대처 요령과 안전 산행 그리고 남에 대한 사랑과 배려에 대한 강의는 절대 잊지 않겠 읍니다. 강사분들과 스텝분들의 자원봉사에 저를 비롯한 동료회원들도 감명 받았 으리라 생각 합니다. 저도 졸업후에 다음기수들을 위해  과연 이렇게 할수 있을까?하고 생각을 참 많이 했고 ,너무 이기적으로 살아 왔던 제 삶이 부끄러웠 읍니다. 시간이 허락 하는한 꼭 봉사활동에 참여 할것을 약속 드리겠읍니다. 저희에게  큰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립 니다.

 

 

 

*** 13 김주희

 

내 생애 첫 암벽등반                                                                                                            

 

미쳤지 미쳤어. 첫날 바위에 엉거주춤 매달려서 도대체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걸까 생각했습니다.

일년 반쯤 저는 아주 큰 수술과 수술후 치료 후유증으로 몸무게가 거의 20 파운드가 불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겹쳤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총체적 난국인 상태에서 도저히 이래선 안되겠다 해서 산행클럽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클럽 회원의 꼬드김으로 겁이 많은 제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두려움을 이겨보고 도전해보고 싶다는 맘으로 입교했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지급받은 장비와 사전 이론 교육에 연계된 실습캠프에 도착해서 잠자리를 가리는 유난한 성격에다가  긴장된 마음으로 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운 첫날

낯선 용어와 장비와 매듭법들에 정신 없고 거기에 발에 꼭끼는 암벽화까지 신고 도무지 진정이 안되는 떨리는 마음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첫날 저는 거의 정신줄을 놨습니다. 암벽을 오르는데 발과 손을 둘곳을 찾지 못하겠고 금방이라도 미끄럴질것만 같아서 미칠것 같았습니다. 하강에서는  제대로 자세를 못잡고 버벅거리는 저하고는 달리 참가하신 모든 분들이 다들 너무 잘하셔서 살짝 자존심이 상하면서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곰곰히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장비? 강의를 통해 그 조그만 장비의 위력에 감탄하면서도 막상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두려움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날아무것도 몰랐던 첫날보다 더 긴장이 되면서 다 집어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꾸욱 누르며 어차피 돌아갈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고 아주 만족할 만하진 않지만 그래도 첫날보다는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첫날 해보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생명줄을 잡아주는 비레이는 부담스러운 마음 만큼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첫 2 3일 수업을 마친 제자신을 기특해하며 나름 만족하며 박수

그리고 두번째 이박삼일 훈련을 위해 찾은 캠핑장.  저는 정말 이렇게 호강에 겨운 캠핑은 처음이었습니다. 텐트 다 쳐주시고 정리해주시고 맛있는 밥 주시고 차 태워주시고  

며칠 사이 매듭 매는 법 구호가 헷갈려서 헤매긴 했지만 저는 6번의 암벽등반을 하면서 조금은 감을 잡은 듯 합니다. 자신감도 조금 생겼구요. 그래도 졸업등반은 긴장됬습니다.

드디어 마지막날의 졸업등반.  암벽에 가기 위한 하이킹 코스도 경사가 있어서 제법 힘듭니다. 그리고 드디어 졸업 등반 다행히 셋중에서 젤 편해보이는 에이코스로 당첨되고 강사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잘 끝냈습니다. 에이보다는 조금 힘들어보인 씨코스를 할껄 그랬나하고 살짝 아쉬워할 정도까지.

정상까지 좀 더 올라 교장 선생님께서 둘러주신 스카프를 매고 다들 서로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축하하는데 마음이 찡하더군요. 기념 사진을 찍고 이젠 하강제 클럽 닉네임대로 천천히 옆에서 15번에 이어 18번 두분이 내려올 동안내려오면서 첫날 하강에서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장족의 발전이다  느끼며 나른 끝까지 해낸 제자신이 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캠핑장에 돌아와서 졸업식 잠깐 동안 이지만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찐한 동지애 같은게 생겼는지 참가하신 다른 분들과 강사님들과 악수와 포옹을 하는데 눈물이 찔끔했습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일년 반 정도의 산행을 하면서도 기본 지식이 너무 없었다는 것 을 깨닫게 해주셨고 등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를 주셨고 암벽 등반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셔서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간직할 기억을 만들게 해주셔서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특히 강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15번 강나리

 

등산학교 ?

 

하이킹클럽에 합류하고 1달 반만에 클럽멤버로 부터 들은 애기.. 암벽등반을 배운다는 말에 재미대한산악연맹사이트를 찾아가고 사진들을 보며, 해보지 않은것에 대한 설렘과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거란 생각에 등산학교에 신청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내 이름은 waiting list에 올랐단다.   철렁 가라앉은 마음으로 연맹으로 전화. 강사진 모임이 곧 있으며, 그모임에서 입학허가가 결정된단다. 며칠을 마음 졸이며 결정을 기다리다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연맹으로 전화.. 앗싸, 등산학교입학허가 확인!!!. 

등산학교 오리엔테이션 4일전, 몸이 이상하다.  어지럽고, 계속 중심을 잃고, 속이 뒤집힌다. 이건 뭔가 정말 이상하다. 한번도 이렇게 중심을 잃어 본적이 없었는데.  마치 아주 심한hangover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등산학교 캠핑은 열흘뒤인데..의사는 Vertigo인것 같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지금 이런게 생기는 건지.. 등산학교때 까지 제발 낫기를

바위앞이다. 다리를 올려본다. 손도 올려본다. 몸이 세워진다. 몸이 발가락에 의지해 서 서진다.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몇번그런데 더이상 다음에 발 디딜곳이 보이지가 않았다. 강사님이 가르켜 주는 곳을 봤다.  그 순간이었다. 힘을 주고 있던 발에 힘이 빠졌다. 아니, 내 다리가 힘을 빼버리고 내 팔이 로프를 잡으려 힘을 주고 있었다.  강사님의 외침이 들려왔다. “손 놔. 안떨어져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로프에서 손을 놓으라니, 무슨 거짓말을.. 강사님이 안하시겠지?  호흡을 가다듬고 손을 로프에서 놓았다.  몸이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안떨어진다!!! 안떨어지는 구나.. ㅋㅋㅋ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펴본다.  여러번의 미끄러짐 끝에 마침내 코스의 끝에 도착했다. 확보를 하고 고개를 돌려 올라온 암벽과 건너편 산을 바라봤다. 가슴이 시원했다.  바위의 느낌이 아주 좋았다. 마음이 정말 편안해졌다 . 생각이 멈추고, 그냥 그자리에 있는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암벽을 타는 재미도 재미지만 (이건 정말로 재미있다), 바위에 붙어서 보는 그 광경은, 그 느낌은 정말 다른 경험이었다.

이번 등산학교에서는 암벽등반뿐 아니라 여러가지 기본적인 등산이론에 대해서도 배우는 시간들이 있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알파인의 역사나, 안전한 등산을 위한 알아야 할것들, 그리고 함께 트레일을 걸으면 설명해 주셨던 여러가지 장비사용법이나, 등산을 제대로 하는법들은 정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가치있는 시간들 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등산학교내내 웃음이 끝친날이 없었던것 같다 (졸업등반 하는 중간 빼고, 이건 정말 힘들어서 하는 등반하는 동안은 절대웃음 안나옴사진 찍을때 빼고). 동기생끼리는 서로에게 닉네임을 붙여주며, 서로서로를 끊임없이 격려하며, 같이 웃고, 같이 땀을 흘렸고. 이런 럭

작성자: 사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