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리(데날리 6,194m)원정 등반기~11


2006년 5월 26일~6월18일 (23박24일) 인원: 5명 ▶ Day 10 2006년 6월 4일



등산의 교과서 맥킨리

▶ Day 21 2006년 6월 15일 자정이 넘었는데도 해가 하늘 끝에 걸려 환하게 비추는
바람마저도 멈춘 이곳은 절대 고요였고 절대 정적만이 흐른다.
가끔 그 고요를 깨우는 눈사태 소리와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만 들린다.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감보다는
참으로 고요함과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삶과 죽음이 곧 하나임을 깨달았음인가?
고맙게도 자정이 넘었는데도
해는 지지도 않고 나를 비쳐 주고 있다.
눈부시도록 환한 태양을 보며
조심!
조심해야 된다는 말을 되새기며 한발 한발씩 내딛는다.
내려가는 것이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기에 얼마나 많은 산악인들이 하산 길에
맥킨리에서 운명을 달리 했다는 것을 생각하며
조심조심 발을 옮기며 내려간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다.
황홀한 풍경이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것이라고 생각하며 하산을 재촉했다.
검은 하늘 가운데 떠있는 태양의 빛이 눈이 부시다.
태양의 강렬한 빛으로 보면
지금 이 추위는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생사를 가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건 정말 기가 막힌 풍경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아픔 끝에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거침없이 드러난 버트레스는 상상보다 더 아름다웠고 웅장하다.


사람의 흔적이 있을 리 만무한 계곡은
크레바스가 갈라져 있었으며 고혹적이었다.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던 크레바스가
쉬었다 가라고 유혹을 한다.
여자가 유혹을 하며 쉬었다 가라고 한들 무감각 할 텐데.
크레바스 네가 아무리 하품을 하고
웃으며 유혹해도 근처에도 안갈 태다.
가끔 방금 내린 신설위로 거센 바람이 노래를 부르며
내 몸과 배낭에 부딪치며 흥을 돋운다.
내 얼굴을 때리며 애무를 하다
달아나는 바람과 나는 한 몸이 되어
술에 취한 듯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듯 걷는다.
거대한 맥킨리의 캠파스에 사랑의 그림을 그리듯
신설위에 내 발자국을 남기며 내려간다.


만일 나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절벽위에 수북이 쌓인
신설에 세 번씩이나 미끄러져 떨어 졌으나
다행히 모두 휙스 로프가 설치되어있는 곳이라
주마가 내 몸을 확보해줘서 멈출 수가 있었다.
맥킨리 시티가 가까워지고 있다.
이곳에는 시간의 정지 화를 넘어서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모두들 잠든 고요한 베이스캠프에는 적막을 깨며
간간히 코고는 소리가 바람결에 희미하게 들려온다.(02:11)


곤히 자고 있는데 준해 형이 깨운다.(04:42)
이른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린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올라 올 때 짐보다 더 많아졌다.
준해 형과 안자일렌을 하고
모두들 잠들어 있는 맥킨리 시티를 출발한다.(05:51)
윈디 코너를 지나 모터사이클에 도착해(10:00)
데포한 스키를 찾으니
브라이언이 윈디 코너를 내려오다가 썰매를 잃어버려서
데포한 짐들을 그대로 나두고 하산을 한다는 메모가 붙어 있다.
오늘 중으로 이곳을 빠져나가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큰일 났다며 서둘러서 하산을 한다.


C 3를 지나면서 부터는 스키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지만,
장시간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것도 힘이 들어서
스키를 썰매에 싫고
걸어서 C 1에 도착(14:04) 눈을 파고 데포한 짐들을 꺼내니
산더미 같은 짐들에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는다.
준해 형은 다시 파묻어 두고 가자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며 썰매에 차곡차곡 싣는다.
짐이 너무 많아서 자꾸 넘어지는 썰매에 화가 나기도 하였지만
오늘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에
열심히 썰매를 끌고 랜딩 포인트에 도착해(17:54)
레인저에게 말하니
곧 비행기가 올 거라며
이곳에 데포한 짐을 파내고 기다리라고 한다.
준해 형이 도착(18:19)하고 세스나기를 탈 준비를 하는데
드디어 세스나기(18:53) 한 대가 랜딩 포인트로 내리고 있다.
이제는 모두 끝났구나 하고 세스나기 곁으로 이동하려고 하니
레인저는 이 비행기는 관광객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이륙하는 비행기라며 더 기다리라고 한다.
비행기가 떠난 후 우리는
다음편의 세스나기를 기다려 보지만(20:00까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처럼
까만 구름이 몰려오는 하늘만 쳐다보다 천막을 친다.


▶ Day 22 2006년 6월 16일 밤새도록 눈이 오더니 아침이 되니 비로 변했다.
오후부터는 정상 등정을 한 다른 팀들이 속속 도착을 한다.
오늘도 틀렸구나하고 하루 종일 잠만 잔다.


▶ Day 23 2006년 6월 17일 09시30 출발 탈키트나 10시10분 랜딩 포인트는 만남과 헤어짐.
시작과 끝의 갈림길이 만나는 터미널 이었지만
오늘 만큼은 수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 갈수 있기를 바라는 바램과 기다림의 터미널 이다.
아침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옆 텐트에서 사람이 뛰쳐나온다.
옥티무스 버너가 터지는 소리다.
얼굴과 손에 화상을 입은 두 사람이 레인저에게 치료를 받는다.
레인저는 오늘은 비행기를 탈수 있으니 짐을 꾸리라고 말하며
너희들이 제일 먼저 타야하는데
환자가 생겨서 그다음이 너희라며 기다리라고 한다.


웽! 하며 세스나기 소리가 들리며
세스나기 한 대가 내렸지만(08:50)
우리는 화상을 입은 팀에게 양보를 하고
세 번째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우리가 탈키트나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10분 이였다.
공항 창고에서 산행 전에 두고 간짐을 찾는데
다시 한 번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는다.
먼저 하산을 한 대원들이
모두들 자신의 장비만 챙겨 가지고 가고
공동 장비는 하나도 가지고 가지를 않았으니,
산더미 같은 짐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준행 형과 4시간 동안 장비를 땅위에 펼쳐서 말리고,
다시 짐을 꾸려서 오후 6시에 떠나는
마지막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
카고 백을 하나를 더 만들어서 오버 차지를 물고
LA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 Day 24 2006년 6월 18일 0시 5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LA로 돌아가고 있다.
24일 이라는 긴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고,
해 보았다.
맥킨리의 차가운 대기 속에 분명 어떤 냄새가 있었다.
고산 특유의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무생물의 세계 맥킨리가 흘려주는 향기다.
악천후와
수많은 크레파스의 위험과
추위 등 고통이 함께 있지만,
맥킨리가 방출하는 아름다움과
맥킨리의 등반 과정이
등산의 교과서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
이곳을 찾는 모든 산악인들에게
충만한 기쁨과 수준 높은 등반의 가치를 안겨 주고 있었다.


등반하는 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도 받았다.
정말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
그리고 실망과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즐거운 마음과 감동만 기억하겠습니다.
끝으로 후원해주신
재미 대한산악연맹 산악 동호인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늘 우리의 안전한 등반을 위해서
지난 겨울동안 훈련을 같이 해주신
에델바이스 산악회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작성자: 유 재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