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리(데날리 6,194m)원정 등반기~7


2006년 5월 26일~6월18일 (23박24일) 인원: 5명 ▶ Day 10 2006년 6월 4일



나는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새벽녘 고함 소리에 눈을 뜬다.
피터 형이 잠꼬대를 하는 소리다.
언제 바람이 불었는지 모를 정도로 고요하고 쾌청한 아침이다.
세상에서 제일 높고,
제일 아름다운 화장실에서 하얀 헌터 봉과 포레이커 봉,
멀리 알래스카 산맥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무아지경에 빠진다.
춥지만 않으면 몇 시간이고 있고 싶은 곳이다.
텐트로 오는 길에 레인저 오피스에 들려서 오늘 날씨를 보니
바람이 20~25마일 이고 기온도 적당해
정상 등정을 하기에 알맞은 좋은 날씨였지만,
백대장이 오늘을 휴식일로 정하였기에,
모두들 아침 늦게 기상하여
고소 증세를 예방해 주는
다이아막스(Diamox, Acetazolamide)와
킹코 바일로바(Ginko Biloba)를 먹고,
우리는 오랜만에 낮잠을 즐긴다.


오랜만에 맞는 좋은 날씨 때문인지
맥킨리 시티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정상 등정을 위해서
헤드 월로 줄지어 오르는 팀들이 많이 있었으나
우리는 어제의 기진맥진으로
텐트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그래도 텐트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여야 한다며 맥킨리 시티를 기웃 거리며 다닌다.
우리 팀에서 사교성이 많은 만우 형과 준해 형은
넉살도 좋게 다른 팀 대원들과 왔다 갖다 하며
이곳 사정 돌아가는 것을 알아보고
산행에 도움이 될 듯 하면 열심히 전달해 준다.


모처럼의 좋은 날씨라
맥킨리 시티에 있는 레인저들 모두 하이 캠프로 올라가
그곳에 레인저 캠프를 설치한다는 소식도 들으며
(오늘부터 하이 캠프에 레인저가 상주 한다고 함)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 Day 11 2006년 6월 05일 오늘도 날씨는 좋았으나
오후에는 바람이 거세질 꺼라 는 일기 예보로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헤드 월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고,
우리 뒤쪽 텐트의 체코슬로바키아 팀은
어제 웨스트 림(West Rim)으로 해서
정상을 다녀왔다며 자랑이 한창이다.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을게 아닌가 하고 걱정도 된다.
브라이언이 유치하지만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며
배낭에서 화토를 꺼낸다.
우리는 화토를 가지고 섯다를 하였고,
놀이에서 진 내가 탈키티나에서 햄버거를 사기로 하였다.
텐트 속에서의 생활이 지루하고 답답해진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 지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 Day 12 2006년 6월 06일 밤새도록 내린 눈으로 맥킨리 시티는 온통 하얗게 변해 있다.
흐린 날씨로 오늘도 이곳에서 무료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10시쯤 사람들이 헤드월로 오르는 것을 보며,
이렇게 무작정 완벽한 날씨를 기다리다가
하이 캠프에 한번 못 올라 가 보고
되돌아가는 게 아닌지 걱정도 된다.
브라이언은 오늘도 화토 판을 벌린다.
어제 저녁 체했다며 배 아파 하던 백대 장도
오늘은 괜찮다며 핼쑥한 얼굴로 판에 껴든다.
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화토 판에 끼기가 싫어,
나는 빠진다며 잠을 청해 보다 레인저 오피스를 가서 보니
오늘은 35~45마일,
내일은 30~40마일로 바람이 분다는 일기 예보다.
텐트로 돌아와 혼자서라도 하이 캠프로 올라가
그곳 사정을 알아보아야겠다며 백 대장에게 의논을 하니
올라가 보라고 한다.


2시간 후 크레바스 빙탑,
3시간 후 헤드 월 위에서,
5시간 후에는 하이 캠프에서 교신을 하자며,
일인용 텐트와 버너,
코펠과 무전기 등,
등반 장비를 챙겨서
일행들의 배웅을 받으며 맥킨리 시티를 출발한다.(13:00)
혼자 솔로로 하는 등반이라
내 페이스대로 천천히 쉬지 않고 오른다.
내 예상대로
두 시간 후에(15:00) 크레바스 빙탑에 도착 교신을 한 후,
깎아지른 빙벽의 헤드 월 상단을
주마를 사용해 한 시간 후에 도착,(16:03)
식량을 데포한 지점에 이르러 다시 교신을 한 후,
(내 앞으로 올라온 팀들은 모두 데포 후 하산을 했음)
약간의 식량을 챙겨서
웨스트 버트리스(West Butress) 절벽 능선 길을 올랐다.


헤드월서 부터는 암벽 설사면 능선으로 위험하기가 그지없었다.
칼날 같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릿지는
레인져들이 설치해놓은 고정 로프가 세 군데나 설치되 있었고,
양쪽은 아찔한 절벽의 암벽 설 능으로
마치 험준한 유럽의 알프스를 등반하는 것 같았다.
때론 거센 바람이 신설과 함께 차디찬 눈보라를 몰고 와
숨 호흡을 하는 사이 폐 깊숙이까지 차가운 기온이 전달된다.


아무도 없는 무서운 칼날 같은 설릉 위를
희박한 공기속의 거센 바람을 헤치며
트레킹 폴과 아이섹스로 중심을 잡아가며
하이 캠프 쪽으로 차근차근 이동을 해가니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짧은 리지 구간인 절벽을 통과할 때는
앞에서 올라가고 있는 팀이 보여서(17:20) 반갑고 고마웠다.
너무나도 위험한 양쪽 절벽의 고도감이 아찔한 좁은 설 능과
리지 구간을 지나 하이 캠프에 도착을 했다.(18:36)


하이 캠프에는 생각 보다 적은 팀들이 있었다.
텐트가 모두 여덟 동으로 그나마 레인저 텐트 세 동을 빼면
겨우 다섯 동 뿐이었다.
다음에 올라올 일행들을 위해서
넓은 캠프 사이트를 잡아
한쪽 구석에 눈을 다지고 보금자리를 만든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텐트치기가 어려웠지만
내가 많이 사용했던 1인용 텐트라 무난히 칠 수가 있었다.
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버너를 피우고 눈을 퍼서 물을 만들고
언 몸을 녹이며 주변을 정리하고
무전기를 꺼내 맥킨리 시티와 교신을 하며
하이 캠프의 상황과,
헤드 월에서 이곳으로 오는 험한 릿지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서
일찍 슬리핑 백 속으로 들어가 누어 본다.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는
너무나 위험한 구간이라 고소 증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슬슬 기분 나쁜 고소 증세가 나타났다.
머리는 아프지 않았지만,
폐에 습기가 있는지 잦은 기침과
몸의 끝 부분인 손가락과 발가락이
전기 고문을 받는 것처럼 저려 온다.
다이아목스와 킹코 바일로바를 먹어 보지만
전기 고문을 하는 듯 한
짜릿짜릿한 기분 나쁨은 가시지를 않는다.
세상에 산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 할까.
가져간 옷들을 전부 껴입고
침낭 속에 누워 있어도 차가워지는 밤이다.


▶ Day 13 2006년 6월 07일 침낭 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밤새 윙윙 울어대는 맥킨리의 성난 숨결을 들으며
몸을 잔뜩 움크리며 새우잠을 잦다.
시간은 왜 그리 더디게 가는지
밤은 왜 그리 긴지 지겨웠다.
하이 캠프는 텐트를 날려 보낼 듯 한 거센 바람과 함께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은비늘의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엇다.
밤새 잦은 기침과
전기 고문을 당하는 듯 한 고소 증에 시달렸다.
9시에 무전 교신을 하고
너무 추워서 하루종일 밖으로 나가지를 못한다.
영하 40도쯤 되나 아무도 밖으로 나오는 사람도 없다.


저 아래로 내려가면
대원들과 따뜻한 텐트에 편안히 있을 수가 있는데…
이런 생각만으로도 육체적인 피로감 보다
정신적인 피로감이 먼저 찾아 왔다.
하이 캠프에서 느낀 고독이다
알 수 없는 긴장과 더불어 두렵고 외로웠다.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시간을 그토록 더디게 가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했다.
높은 곳에 오르면 알수 없는 세상이 보이기라도 하나
나는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베이스캠프의 따뜻한 커피가 생각이 난다.
무전 약속을 한 오후 6시에 베이스캠프를 불러 보지만
무전 교신이 안 된다.
대원들의 목소리라도 들었으면 한결 덜 추웠을 텐데….
섭섭한 마음이 든다.
내 주변은 차갑고 쌩쌩 소리 내어 울부짖는 바람 소리뿐
나를 따뜻하게 해 줄수 있는것은 하나도 없었다.


작성자: 유 재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