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리(데날리 6,194m)원정 등반기~9


2006년 5월 26일~6월18일 (23박24일) 인원: 5명 ▶ Day 16 2006년 6월 10일



“다들 떠났구나.”

지금 당장 내려오지 않으면
철수를 하겠다는 소리와
땅속에 묻히는 악몽을 꾸다
폐소 공포증에 걸린 듯
더 이상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서 벌떡 일어나려니
텐트를 찌그러트린 눈이 내 양옆 가슴을 누르고 있다.
침낭 속을 빠져 나오려고 해 보지만 나올 수가 없다.
양팔에 힘을 줘가며 공간을 넓히며 겨우 일어난다.
자일파트를 할 악우도 생겼는데
이러다가 정상 도전도 한번 못해 보고
그냥 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밤새도록 강한 바람 소리를 들으며
답답함과 걱정이 앞선 고난의 밤이었다.


멍하니 앉아 무전 교신 시간인 9시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오늘 오후 1시에 모두들 철수를 한다며
빨리 내려오라는 준해 형의 무전 교신에
“아직도 많은 날이 남아 있는데
이렇게 내려가면 안 된다고” 말을 해 보지만
모두들 오늘 철수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나는 50마일 이상의 바람을 헤치며 혼자서 내려갈 수 없으니
잠시 후 다시 한 번 더 무전 교신을 하자고 하고,
마이클을 불러 텐트 앞의 눈을 치워 달라고 부탁을 한다.
밖으로 나오니 눈은 그쳤지만
이내 한기가 차가운 바람과 함께 온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이클에게
우리 팀은 오늘 베이스캠프에서 철수를 한다고 말하니
이들도 동요가 되는지 앞으로 일기 예보가 어떠냐고 묻는다.
그건 우리 일행과 무전 연락을 해 보아야 알겠지만,
계속 나쁘다고 헸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니,
자기 팀도
데이빗의 동상 걸린 손이 점점 더 심해져서
하산을 하겠다고 한다.


엄청난 고생을 하며 지금까지 버티어 왔는데
여기서 힘 한번 써보지도 않고 포기를 한다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하는 수 없이 하산을 하기로 한다.
정말 나는 오르고 싶었다.
하산을 결정하기까지 한참을 갈등을 했으나
막상 결정을 하고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발걸음을 떼자니 분하고 억울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이번 산행에 꼭 정상에 오르려고
모두들 지난겨울 내내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
두세 명은 꼭 정상에 오를 거라고 자신을 했는데 그건 꿈이었다.
깨기 싫은 꿈이었다,
현실은 내 꿈이 깨진 것을 알려 주었다.


이제는 등반은 중요 하지가 않았다.
정상을 오르지 못하더라도
맥킨리를 볼 수 있게
나를 이곳으로 이끈 신에게 감사를 하며….
무사히 베이스캠프까지 하산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버너를 피워 물을 만들어 아침 식사를 하고
텐트를 걷고 눈 속에 묻힌 장비를 하나씩 챙기는
춥고 지겨운 절차가 3시간 이상 지속되고서야
한 명씩 생명줄을 연결 출발할 준비가 되었다.(14:56)


선두는 세 번씩이나 맥킨리를 왔지만
정상한번 못 올라가 보고 내려가는
타이완 팀의 홍일점 조이가 서고
(조이는 공무원으로 인도의 티리치미르(7,708m) 등반에서
동상으로 세 손가락을 잃어버린 대만 팀의 여성 산악인)
두 번째는 K2를 다녀왔다는 트럭 운전사 데이빗이,
세 번째는 보험회사에 다닌다는 마이클이,
후미는 사진이라도 실컷 찍게 해 달라는
내 부탁을 들어줘서 내가보았다.
체력의 쇠퇴 때문인지 내려가는 몸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지만
이들과 같이 안자일렌을 하고 내려간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됐다.
이날 하이 캠프에는 한 팀만 남고 모두들 철수를 했다.


앞장서서 내려가는 타이완 팀들이 너무 고맙고,
이제 이곳도 마지막 이라는 생각에
짬이 나는 데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그들과 같이 내려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엄청난 바람 때문에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모두들 아이섹스로 자기 확보를 하기에 바쁘니…
우리는 설 능에서 바람에 기우뚱 거리며
서로를 확보해주며 힘겹게 움직여,
바람이 더 거세진 헤드 월 새들에 도착 했다.(16:57)
나는 이곳에서 우리 팀이 버리고 간
식량과 장비를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아
잠시만 기다리라며 정신없이 눈을 파 헤쳤다.
모두들 미쳤냐며
더 추워지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된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우리 팀의 흔적을 이곳에 남겨 두고 갈수가 없었다.
먼저 내려가라고 하고 자일을 풀어 주니
그들은 조심하라고 하고 고정 로프를 타고 내려갔다.


한 참후 큰 포대 자루로 한가득인
식량과 연료, 버너, 스노우 삽, 얼음 톱,
피켈, CMC(플라스틱 변기통)등
우리 일행들이 버리고 간 많은 짐들을
미친 듯 배낭에 꾸겨 넣고는 출발을 하지만
바람은 더욱 더 거세지고
양쪽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과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아 두 번씩 실족 하며 미끄러져
고정 로프에 매달려 몸부림을 치다,
겨우, 겨우, 안전지대인 크레바스 빙탑 밑에 도착했다.


저 아래 고요한 적막 속에 파묻혀
까마득히 보이는 맥킨리 시티를 보니
갑자기 서러움과 복받치는 감정에 눈물이 나와,
아무도 없는 설원에서 미친 듯 소리 내어 울었다.
무거운 짐 때문에
몇 발자국을 가지 못하고 한참을 털썩 주저앉았다가,
쉬고 또 쉬며 걷다가.
크레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눈 위에 털썩 주저앉자
미끄럼(그리셀링)을 타고
힘들게 내려오기도 하며 한발 한발 걸으니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던 맥킨리 시티가 코앞이다.


우리 팀의 캠프 사이트에 도착하니(20:51)
캠프 사이트는 비어 있었고
빈 공간속에 작은 텐트 한 동만이 구석에 있었다.
“다들 떠났구나.” 하는 서러운 마음에
한참을 넋을 잃고 서있으니
뒤쪽 텐트에 있던 체코 팀 대원이
내게 다가와 배낭을 내려 줄까 물으며
내 배낭을 내려 주며
이 무거운 배낭을 어떻게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냐며 놀랜다.
그때 구석의 작은 텐트 안에서 “재일이니” 하며
준해 형이 나와서 걱정을 했다며 꽉 끌어안는다.
“형!
집으로 돌아갈 날짜기 아직도 멀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철수를 해야 돼,
모두들 이곳을 오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
하이 캠프 까지도 못 올라오고,
사고가 난 것도 아닌데
자신의 장비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라며
애꿎은 준해 형에게 화풀이를 해본다.
준해 형도 눈물을 글썽이며
네 명이 줄을 묵었다고 해서
저녁 내내 헤드 월만 쳐다보고 있었다며
사고가 난줄 알았어!
무사히 내려 와줘서 고맙다며 운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다가 텐트 속으로 들어가
밤새도록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든다.


▶ Day 17 2006년 6월 11일 인간의 마음이란 늘 변하는 것인가…
오늘 렌딩 포인트로 하산을 하기로 했지만,
어제 밤부터 계속 눈이 내리고 있어 하산 길이 막혔다.
종일 텐트 안에 갇혀 있으며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 갈려니 마음도 내키지 않았다.
준해 형에게
형!
6월16일이 되려면 아직도 엿새나 남았어!
눈이 그쳐도 며칠만 더 머물다가
날씨가 좋아 지면 다시 올라가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데
이대로 철수 한다는 것 정말 너무 억울하잖아?
하며 준해 형을 꼬이니
마음 약한 준해 형은 그렇게 하라고 한다.
형의 마음을 돌려놓고는 고소에 지친 몸을 추스르느라
하루 종일 텐트 안에서 형이 해주는 밥을 먹고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기 예보를 기대하며 잠만 잤다.


▶ Day 18 2006년 6월 12일 내일의 기상 상황을 위해 레인저 사무실에 들러보니
내일부터 삼일 동안 바람이 30마일 정도로 분다고 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내일은 무조건 하이 캠프로 올라가기로 마음을 먹고,
준해 형에게
안자일렌을 같이 할 사람을 구해 달라며 하루 종일 잠을 자다가
오후 늦게 캠프 사이트의 눈 블럭 보수를 하고 일찍 잤다.


작성자: 유 재 일